2010년 07월 28일
짧은 인연
<생전 사진은 계속 보고 있자니 가슴 아파 삭제합니다>
5월 말쯤 산에 가셨던 아버지께서 산토끼 한마리를 데려오셨습니다.
아직 한 손바닥 크기도 안 될만큼 어린 토끼는 야생에서 지내던 습성이 있어 친해지지 못했고 늘 사람을 경계하고 피했습니다.
그러기를 두달간 반복하다 어느날 토끼가 저항을 하지 않고 사람을 피하지 않자 전 드디어 토끼가 길이 들었나 하며 기뻐했습니다.
먹이를 줘도 사람 앞에선 먹지 않고 안아 들어도 잠시를 못 버티고 버둥대던 토끼가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모습이 그저 흐뭇했습니다.
하지만 토끼는 나날이 기운이 사라져갔고 며칠 전부터 토끼의 똥이 길쭉하고 좀 마른 듯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인터넷에서 대충 찾아보고 더위 먹은게 아닐까 하며 토끼장을 바람이 잘 드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던 오늘 아침...
해 뜰 무렵 비가 내려 부랴부랴 토끼를 집안에 데려와 물기를 닦아주고 말린 뒤 풀어줬더니 토끼가 일어서질 못했습니다.
뭔가 심각하다는 생각에 토끼를 안고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가는 동안 토끼는 계속 눈을 감으려고 했고 불안한 저는 필사적으로 토끼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동물병원에 도착하니 선생님께서 설사에 저체온이라고 합니다.
하루만 더 빨리 왔어도 희망이 있을거라는 선생님의 말을 그저 멍하니 흘려듣고 주사를 맞고 포도당을 마시자 토끼가 기운이 나는 듯해 안심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에 병원에 와본게 어디냐는 선생님의 말도 심각하게 듣지 않고 내주신 약과 포도당을 받아들고 나을 수 있다는 희망에 들떠 집으로 왔습니다.
겨우겨우 약과 포도당을 먹이고 풀을 줬지만 좀처럼 입에 대지 않기에 좋아하던 콩잎 몇개를 따와서 입에 대주니 오물오물 씹어먹기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저체온이라기에 바구니에 수건을 깔고 덮어준 뒤 언제든 먹을 수 있게 콩잎을 잘게 찢어 토끼 앞에 두고 늦은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몰려오는 피로에 20분 정도 눈을 붙인 뒤 토끼에게 가보니 토끼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반쯤 누운 채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귀를 만져보니 서늘했습니다.
놀라서 수건을 걷고 몸을 만져보니 따뜻하던 몸에서 온기가 빠져나갔습니다.
설마설마하며 한참을 더 안고 있었지만 미동도 없고 고동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당장이라도 일어나 북북하며 대들 것 같은 착각에 빠졌지만 토끼는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사람을 따르지 않던 토끼가 기운이 없는 모습을 사람에게 길들었다고 착각하고
토끼가 말라가는 것을 더워먹은 것이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자기 일에 바쁜 나머지 토끼에게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탓에 안타까운 생명이 하나 사라졌습니다.
슬픈건지 우울한건지 그저 아무런 의욕이 없고 멍하기만 하네요.
이름조차 지어주지 못했는데 이렇게 떠나보낼 줄은...

방금 집 근처 대학교의 산책로 옆에 묻어주고 왔습니다.
산책로지만 사람이 밟을만한 위치가 아니고, 무덤을 만들어도 폐가 되지 않을 것 같은 양지바른 곳에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생전에 콩 잎과 아까시 잎을 즐겨먹기에 아까시 나무가 많은 곳을 찾아 가져간 호미로 땅을 파고 이제는 뻣뻣하게 굳어버린 토끼를 종이에 싸서 먹던 풀과 함께 묻은 뒤 잔돌을 골라 무덤가에 세우고 아까시 가지를 뜯어 무덤 앞에 두었습니다.
...어차피 이젠 입에 댈 수 없을테지만요.
이럴 줄 알았으면 생전에 좀더 배불리 먹여주는건데 게으른 탓에 좋아하는 먹이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죄책감이 듭니다.
토끼를 묻어주고 나자 갑자기 눈물이 흐르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한동안 소리내어 엉엉 울었습니다.
그동안 친척분들이 돌아가셔도 눈시울만 젖은 정도였는데 얼마 만에 소리내어 울어본 건지...
돌아오는 길엔 울어서 부은 얼굴을 보이는게 부끄러워 비가 그쳤는데도 우산을 푹 눌러쓰고 돌아왔습니다.
풀잎 하나라도 남아있으면 또 토끼 생각이 날 듯해서 토끼집을 뜯고 깨끗이 물청소를 했습니다.
이런 후미진 곳에서 외롭게 지내야했던 토끼를 생각하자 다시 눈물이 날 듯했습니다.
토끼의 주검을 보시지 못한 어머니께서 토끼 생각이 안 나게 냉장고도 구석구석 깨끗이 치우고 떨어진 풀 한포기조차 안 보이도록 대청소를 했습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찍은 토끼 무덤 사진을 보자 절로 눈물이 나왔습니다.
생전 모습은 제대로 찍힌게 없는데 무덤 사진만은 어째서 깔끔하게 나온건지...
왜 살아있을 때 좀더 잘 해주지 못했냐는 생각이 계속 들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제 아침에 찾아간 동물병원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지어온 약을 폐기해달라고 부탁드려야겠습니다.
짧은 기간이나마 인연을 맺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그리고 이젠 볼 수 없는 이름없는 토끼에게 작별의 인사를.
# by | 2010/07/28 15:55 | 일상 Life | 트랙백 | 덧글(11)



















